우리는 분명 "속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반복적으로 거짓 정보에 흔들리고 속아 넘어갑니다. 때로는 너무 뻔한 거짓말에도 말이죠. 뇌는 왜 이렇게 거짓에 취약할까요? 알고 보면, 이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닌 뇌의 구조적 특징에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뇌는 진실보다 ‘가능성’을 우선한다
사람의 뇌는 처음 들은 정보를 곧바로 의심하기보다는, 일단 받아들이고 맥락 속에 배치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인지 처리의 효율성 때문입니다. 뇌는 매 순간 방대한 양의 정보를 처리해야 하기에, 모든 정보를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검증하기엔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듭니다. 그래서 뇌는 일단 ‘그럴 듯한 것’을 우선 채택하고, 나중에 필요시 수정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이러한 성향은 진화론적으로도 유리했습니다. 원시 시대 인간은 빠른 판단이 생존에 직결됐기 때문에, 위험하거나 중요한 정보는 일단 믿고 행동하는 것이 유리했죠. 하지만 현대 사회에선 이 전략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가짜 뉴스, 조작된 정보, 선동적인 메시지는 모두 이 뇌의 습관을 이용해 퍼져 나갑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모 회사 제품에 발암물질이 있다더라”는 이야기를 하면, 과학적 근거가 없더라도 그럴듯한 분위기나 말투에 따라 우리 뇌는 그 정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려 합니다. 특히 그 말이 감정을 자극하거나 공포, 분노 같은 반응을 일으킨다면 더더욱 쉽게 믿게 됩니다. 뇌는 이성보다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뇌는 진실 여부보다는 맥락, 반복, 감정 반응 등을 통해 판단을 내립니다. 이 때문에 아무리 허술한 거짓말이라도 상황과 연출이 받쳐주면 쉽게 속게 되는 것이죠.
왜 반복되는 거짓은 결국 진실처럼 느껴질까?
“거짓말도 백 번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는 말은 단순한 풍자에 그치지 않습니다. 뇌과학적으로도 이 현상은 입증된 사실입니다. 이는 노출 효과(Exposure Effect) 혹은 사실 착각 효과(Truth Illusion)라고도 불리는데, 뇌는 어떤 정보든 반복적으로 접할수록 ‘익숙함’을 느끼고, 이 익숙함을 곧 진실의 신호로 착각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처음엔 거짓말처럼 들렸던 주장도, 여러 매체나 다양한 사람을 통해 계속 듣게 되면 어느 순간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며듭니다. 뇌는 새로운 정보를 처리할 때 기존에 저장된 기억과 비교하고 연결하는데, 반복 노출된 정보는 이미 기억 회로에 자리잡은 상태이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때 그것과 일치하는 내용을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편도체와 해마, 그리고 전두엽입니다. 편도체는 정보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기록하고, 해마는 그 정보를 기억에 저장하며, 전두엽은 판단과 억제를 담당합니다. 문제는 반복 노출된 정보가 편안하게 느껴지면 전두엽은 판단을 멈추고, 그냥 수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SNS, 유튜브, 포털 뉴스 등에서 특정 정보에 반복적으로 노출될수록, 그 내용이 실제로는 검증되지 않았더라도 점점 ‘믿을 만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죠. 이는 비단 개인뿐 아니라 집단 전체의 판단까지 흐리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현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거짓에 더 잘 속을까?
거짓 정보에 대한 반응은 개인차가 큽니다. 어떤 사람은 매우 회의적으로 접근하고, 어떤 사람은 쉽게 믿고 따라갑니다. 이 차이는 뇌의 신경망 구성, 성격 특성, 스트레스 상태, 사회적 환경 등 여러 요인의 복합 결과입니다. 특히 스트레스나 피로가 높은 상태일수록 뇌의 판단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활동은 저하되고, 편도체 중심의 감정 반응이 강화됩니다. 그 결과, 평소보다 감정에 휘둘리기 쉽고, 정보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 없이 반응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하루 종일 과로한 사람이 퇴근 후 보는 자극적인 뉴스에 더 쉽게 휘둘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또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도 거짓을 믿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뇌는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정보를 뒷받침해주는 자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축소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잘못된 정보라도 자신의 기존 신념과 일치하면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게다가 사회적 고립이나 불안감이 큰 사람일수록 자신이 속할 수 있는 정보 공동체를 찾게 되고, 이때 가짜 정보 커뮤니티에 빠질 가능성도 커집니다. 뇌는 연결을 원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든 관계 속에서 제공되는 정보에는 더 강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거짓을 믿는 것’이 단순한 판단 착오를 넘어서, 심리적 생존 전략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결론 : 뇌를 속이는 건 어렵지 않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우리 뇌는 생각보다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정보의 정확성보다는 익숙함, 감정 반응, 맥락, 사회적 신호 등을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며, 이로 인해 거짓말에도 쉽게 속아넘어가게 됩니다. 이는 뇌의 오류가 아니라 효율을 추구하는 시스템의 부산물입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정보 과잉 시대에선 오히려 독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의식적으로 정보에 대응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감정적으로 자극적인 정보는 한 번 더 의심하기, 반복 노출된 정보일수록 출처를 확인하기,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견해를 일부러 접해보는 시도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결국 거짓말에 속지 않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뇌를 더 잘 이해하고 뇌에게 선택의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즉각 반응하지 않고, 잠시 멈춰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 그렇게 뇌에게 판단의 여백을 줄 때, 우리는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뇌를 속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뇌를 지키는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정보는, 뇌 안의 판단 체계를 바꾸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어떤 정보에 내 뇌를 맡기고 계신가요?